경복궁 무료해설투어 후기
긴 연휴를 맞아 경복궁을 찾았다.
아침까지 비가 오더니, 경복궁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그쳤다.
사실 비내리는 경복궁을 보고 싶었는데, 좀 아쉬웠다.
일단 표를 샀다.
입장료는 성인 3천원이다.
재밌는건 경복궁에서는 무료 해설 투어를 진행한다.
시간표는 아래와 같다.
출처 : 문화재청
마침 4시에 무료 해설 투어가 시작되어서, 잽싸게 달려갔다.
해설 투어는 흥례문 입장하자마자 (즉 경복궁 티케팅하자마자) 오른편에서 시작한다.
2분 정도 늦었지만 다행히 투어가 시작되지 않았다.
투어는 흥례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다리부터 시작한다.
이름은 영제교인데 이 영제교 아래에는 금천(禁川)이 흐른다.
이는 입궐하는 신하들의 마음을 씻고 액운을 물리치는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훼손되면서 영제교도 훼손되었다가 고종 때 다시 설치했다고 한다.
일제감정기때 총독부 건물을 만들면서 또 다리가 해체되었다가,
2001년 흥례문, 유화문과 함께 복원되었다.
꽤나 지난한 역사를 가진 다리다.
근정전의 정문.
정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답도라는 조성물이 있다.
이 답도 위로 임금님의 가마가 지나간다.
가운데 네모난 문양은 두마리 봉황을 새겨 놓은 것이다.
몰랐는데 봉이 수컷을 뜻하고 황은 암컷을 뜻한다고 한다.
왕실의 권위를 나타내는 문양이라 한다.
양 옆에는 두마리 해태가 있는데 해태는 옳지 못한 것을 뿔로 받아 버리기 때문에 정의를 상징한다고 한다.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코드 둥글해서 귀엽다.
근정전이라는 이름은 정도전이 지었다고 한다.
‘근정(勤政)’이란 부지런하게 정치하라는 뜻.
이곳은 왕위 즉위식이 열린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서 정종과 세종, 단종, 세조 등의 이곳에서 왕위를 물려받았다.
또한 왕실 혼례식을 거행하고 공식적인 사신들을 맞이 했던 곳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곳이기도 하다.
마당이 굉장히 넓은데 이곳에서 조정의 신하들이 모였다고 한다.
사진에는 담지 못했지만 문무관이 신분에 따라 서 있는 자리를 표시한 품계석이 있다.
바닥은 울퉁불퉁한 박석이 불규칙하게 깔려 있다.
이는 햇빛이 반사되는 것을 막아서 눈부심을 방지하고 가죽신을 신은 신하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용도를 가진다.
근정전은 2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층 구조다.
내부의 정중앙에는 어좌(왕의 자리)가 있다.
뒷편에는 해와 달 그리고 다섯 산봉우리를 그린 일월오봉도가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 만원짜리 지폐에도 그려져 있다.
천장에는 여의주를 다루는 황룡 두마리가 새겨져 있다. 자세히 보면 발가락이 7개인 칠조룡이다.
오조룡(五爪龍)은 왕을 상징하고 칠조룡(七爪龍)은 황제를 상징하는데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자신의 아들 고종이 청나라 황제와 견주길 바라며 칠조룡을 그렸다고 한다.
근정전은 2003년에 단청을 새롭게 칠해서 색이 선명하다.
궁궐의 처마를 자세히 보면 그물망같은 것들이 쳐져 있는데 이 그물망은 조선시대에도 존재 했다고 한다.
다만 예전에는 명주실로 쳤다고 한다.
이름은 부시라고 하는데 새들의 배설물을 막기위해 어명으로 설치한 것이다.
새들의 배설물은 산성이 강하기 떄문에 부식을 막기 위한 임금의 처사였을 것이다.
사정전으로 들어가기 전 사정문.
사정전은 임금이 정무를 보던 곳이다.
국정을 결정하기 위해 신하들과 밤낮으로 토론하고 경연제도를 통해 지식을 교류했다.
조선시대의 뛰어난 임금인 세종은 새벽 3시부터 신하들과 회의를 하곤했다고 한다.
반대로 연산군은 경연제도에 소홀했고 후반에는 급기야는 경연 제도를 없애 버렸다.
경회루. 조선 시대에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마다 연회를 베풀던 누각이다.
1412년에 만들어졌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고 고종때 다시 준공되었다.
1층에 화강암 돌기둥 24개가 있는데 어떤 기둥은 네모지고 어떤 기둥은 원형이다.
이는 동양의 우주관을 내포한 곳인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하늘의 이치를 담은 것
둥근 기둥은 하늘을 네모난 기둥은 땅을 상징한다.
경회루에 얽힌 사자 성어가 있으니 바로 ‘흥청망청’이다.
조선 시대를 풍미했던 연산군은 조선 팔도에 내노라하는 기생과 부녀자들을 선발하여 놀던 장소가 바로 경회루인데 이중 빼어난 기생을 뜻하는 단어가 바로 흥청이라는 뜻이다.
강녕전. 임금의 침전이다.
강녕전은 오복(장수, 부귀, 강녕, 덕, 편안한 죽음) 가운데 세번째 복인 강녕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강녕이란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상태를 뜻한다.
즉 임금이 강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다.
왕비의 침전은 임금의 침전과 떨어져 있는데, 강녕전 바로 뒤편에 존재한다.
강녕전에서 교태전으로 가는 길목에는 양의문이 있는데, 양의문 양쪽 담에는 두개의 굴뚝이 있다.
각각의 굴뚝의 아래에는 각각 ‘만수무강(萬壽無疆)’ ‘천세만세(千世萬歲)’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교태전(交泰殿)은 왕비의 업무공간 생활공간이다.
사귈 교(交) 클 태(泰) 자의 한자를 따서 ‘왕비가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왕실과 주변과 두루두루 교제하고 화목하여야만이 왕실이 태평하다’라는 의미다.
특이하게 생긴 문이 있었는데 문을 열먼 아궁이가 나온다고 한다.
교태전 뒤에는 왕비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아미산 정원이 있다.
이 정원의 독특한 점은 정원 사이로 북악산 봉우리가 보이는데 이 모습이 정원요소로 작용한다.
아미산 정원에 예쁘게 솟아 있는 4개의 기둥은 굴뚝이다. 건물과 떨어뜨려서 유독가스를 멀리 보낸다.
아쉽게도 지금은 나무가 많이 우거져서 북악산 봉우리는 보이지 않았다.
경복궁의 각 건물을 살펴보면 추녀마루 끝에 조그마한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서유기의 주인공인 손오공과 삼장법사의 행렬을 묘사한 잡상이라고 한다.
앞에서 부터 차례대로 삼장법사,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라고 한다.
이 서유기 등장인물들이 우리나라 궁궐 처마 끝에 올라간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그래서 찾아보니 서유기의 일행이 불법을 가지러 천축국에 다녀오면서 모든 사귀를 물리치고 불법을 얻어왔기 때문에
이 일행들의 잡상을 처마위에 올림으로써 모든 사악한 잡귀를 물러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자경전 뒷편에는 보물 810호인 십장생 굴뚝이 있다.
기능도 뛰어나지만 외관이 아름다워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로써 1시간 가량의 무료 해설 투어는 끝이 났다.
비가 그치고 나서 땡볕이 내려쬐서 좀 더웠는데, 가이드께서 그늘을 찾아주셔서 그늘에서 편하게 해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해설은 경복궁 내에 있는 모든 명소들을 다루지는 않고 역사적으로 주요 명소들 위주로 설명한다.
경복궁 자체가 워낙 크다보니 짧은 시간안에 모든 것을 설명하기 힘들것이다.
후에 해설 가이드께서 명성황후가 시해된 장소인 건천궁에 대해서 짤막하게 설명을 해줘서 한번 직접 가보기로 했다.
경복궁 북쪽으로 걸어올라가면 건천궁이 나온다.
뭔가 지금까지 봐온 궁전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일단 경복궁 궁궐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단청이 보이지 않아 소박하다
또한 입구 자체 궁궐의 느낌 보다는 어느 양반집 문 같다.
이는 왕의 업무를 잠시 내려놓고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는 고종의 의도가 엿보인다.
명성황후가 1884년부터 1895년까지 침전으로 사용하던 건물이자,
1985년 일본 자객에 의해 시해되어 을미사변이 일어난 곳이다.
끔찍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곳인데, 지금은 고요함만이 가득하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로 전기가 들어온 곳이기도 하다.
에디슨 전구회사로 부터 전구를 수입해서 건천궁을 밝혔다고 한다.
건천궁을 둘러보니 어느덧 시간이 6시 15분을 가리킨다.
이때쯤이 되면 관리인들이 다가와 퇴장할 것을 요구한다.
퇴장하는 길에 근정전의 모습이 아름다워 담았다.
광화문으로 나가는 길.
광화문 앞으로 높게 펼쳐진 빌딩 그리고 푸르른 하늘이 멋지다.
정말 날 잘잡은 것 같다.
경복궁에서는 화요일 휴무를 제외하고는 무료해설을 제공한다고 한다.
알면 보이는게 많으니 꼭 한번들어보기를 추천한다.
경복궁이나 주요 궁궐들을 공부해서 언젠가는 외국인 대상으로 무료 가이드 투어도 해보고 싶다.
이상으로 경복궁 무료해설투어후기 끝.
역사적으로 제가 잘못적은 부분이 있다면 덧글 남겨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