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김애란) – 문학 속 농담에 대한 이야기
예전에 학교에서 김애란 작가님 강연이 있어서 찾아간 적이 있었다. 문학 속 농담에 관한 주제에 대한 강연이었지만, 단순히 문학을 넘어 삶에 대한 그녀의 태도와 통찰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바로, ‘농담’에 대한 그녀의 해석이다. 그녀가 말하길, 농담이란 ‘바위에 묶인 풍선’이다. 이 말의 의미는 비록 풍선의 힘으로 무거운 바위를 들 수 없지만, 풍선의 분위기가 바위 주변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님은 ‘달려라 아비’를 통해, 농담이 ‘바위에 묶인 풍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로 보여주었다.
소설 속의 ‘나’는 아버지가 없는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녀는 아버지가 없지만, 다만 여기에 없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의 상상 속의 아버지는 항상 달리고 있다. 아버지는 딱 한 번 세상을 향해 온 힘으로 뛰었을 때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어머니를 안으려고 피임약을 사러 약국에 달려갔을 때이다. 그렇게 ‘나’는 태어났고, 아버지는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달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한 장의 편지가 돌아온다. 편지의 내용은 아버지의 아들이 보낸 것이었고,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였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편지를 읽고 그녀는 생각한다.
‘나는 결국 용서할 수 없어 상상한 것이 아닐까?....내가 아버지를 뛰게 만든 이유는 아버지가 달리기를 멈추는 순간, 내가 아버지에게 달려가 죽여버리게 될까봐 그랬던 것은 아닐까’-p.27
소설은 주인공인 ‘나’가 자신을 만들어 놓고 사라져버린 ‘무책임한’ 아버지를, 한 번도 어머니를 위해 뛰어오지 않았던 아버지를 미워하고 증오하면서 충분히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야광바지를 입고 달리고 있는 아버지를 상상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아버지가 죽게 되는 어두운 과정도 아버지가 잔디깎이를 타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전혀 어두운 분위기가 연출이 되지 않는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작가가 말한 ‘바위에 묶인 풍선’과 같은 농담이 스며있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을 했다. 소설 속의 ‘나’는 우울할 때마다, 어머니의 농담을 우울의 늪에서 빠져 나오곤 했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찰리 채플린의 말이 떠올랐던 것도, 아마 어머니의 ‘농담’이 소설 속의 ‘나’의 현실을 한발 짝 물러나 좀 더 넓은 눈으로 바라 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